분류 전체보기 (90) 썸네일형 리스트형 메이비 - 장영수 메이비 장영수 우리는 고무신으로 찝차를 만들었다. 미군 찝차가 달려왔다. 네가 내리고. 미군들이 쑤왈거리다가 메이비, 하고 떠나고. 그리하여 너는 메이비가 되었다. 미제 껌을 씹는 메이비. 종아리 맞는 메이비. 흑판에 밀감을 냅다 던지는 메이비. 으깨진 조각을 주우려고 아이들은 밀려 닥치고. 그 뒤에, 허리에 손을 얹고 섰는 미군 같은 메이비. 남자보다 뚝심 센 여자애보다 뚝심 센 메이비. 여자애를 발길로 걷어 차는 메이비. 지금은 비가 내리고. 어느 틈엔지 미군들을 따라 떠나 버린 메이비. 바다 건너 가 소식도 모를 제 이름도 모르던 메이비. 어차피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가 고아였다. 메이비. 다시는 너를 메이비라고 부르지 않을 메이비. ☆ 장.. 금빛 은빛 - 홍희표 금빛 은빛 홍희표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면 임진강변의 민들레 하이얀 낙하산 달고 남으로 남으로 떠가네 한양으로 부산으로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하는 철마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면 임진강변의 민들레 하이얀 낙하산 달고 북으로 북으로 떠가네 피양으로 신의주로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하는 철마 금빛 은빛 혼령만 오가고…… ☆ 홍희표: 1946년 대전 출생. 1966년 으로 등단. 시집으로 『살풀이』, 『숨쉬기』, 『모두 모두꽃』 등이 있음. 현재 목원대 교수. 호 산하(山下). 1946년 10월 6일 충남 대전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거쳐 인하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대전지회 부회장을 맡은 바 있고, .. 줄다리기 - 박상천 줄다리기 박상천 줄다리기의 역설을 아는 이들은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힘이 강한 이가 힘을 쓴 만큼 그들은 뒤로 물러갑니다 물러가고서도 이겼다고 좋아하지만, 그러나 아시나요 힘이 약해 끌려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강한 이들의 영토를 차지하면서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줄다리기의 역설을 아는 이들은 세상을,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 박상천: 1955년 전남 여수 출생. 1980년 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랑을 찾기까지』 등이 있음. 현대 한양대 국문과 교수. #인기 #박상천 #가방 #줄다리기 용산에서.1 - 박영근 용산에서·1 박영근 OFF LIMITS 철조망 녹슬어 가는 높은 담장 안에 비무장한 나무들이 새 둥우리 하나 지키고 있다 ☆ 박영근: 1958년 전북 부안 출생. 별칭: 노동시인 1981년 로 등단. 시집으로 『취업공고판 앞에서』, 『대열』 등이 있음. 1958년 9월 3일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에서 태어났다. 1974년 3월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제도권 교육에 실망하여 스스로 그만두었다. 1980년 군에서 제대한 뒤 서울로 와 구로공단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시동인 《말과힘》에서 활동하였다. 1981년 《반시 反詩》 6집에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84년 펴낸 《취업공고판 앞에서》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현장노동.. 아메리카 들소 - 윤재철 아메리카 들소 윤재철 네 고향은 이제 빼앗긴 아메리카 대평원이지만 선량하고 거대한 네 어깨는 어쩌면 시골길의 야트막한 산봉우리들을 닮아 어깨로부터 길게 늘어진 머리는 하늘보다 늘 땅에 가깝다 어릴 적 미군부대 철조망에 매달려 헬로우 헬로우 껌을 외칠 때 기름칠을 하던 기관총을 우리를 향해 겨누던 벌거벗은 미군 병사의 거대한 체구를 너는 닮았지만 실상 나의 머리 속에는 우르르 몰려왔다 몰려가며 백인들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인디언의 등돌린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하여 너를 돌아가라고 하지 못하는 걸까 기름지고 광활한 네 조국 너를 잡아 부강하고 비대해진 네 조국 아메리카로 돌아가라고 하지 못하는 걸까 디굴디굴하고 안으로 깊은 네 눈을 보면 아메리카는 하나의 수모에 불과해 네 눈은 논두렁길 둠벙.. 지상의 끼니 - 이기철 지상의 끼니 이기철 종일 땀흘리고 돌아와 바라보는 식탁 위 밥 한 그릇 나를 따라오느라 고생한 신발, 올이 닳은 양말 불빛 아래 보이는 저 거룩한 것들 한 종지의 간장, 한 접시의 시금치 무침 한 컵의 물, 한 대접의 콩나물국 부딪치면 소리내는 한 쟁반의 멸치볶음 저것들이 내 하루를 이끌고 있다 내일도 저것들이 부젓가락 같은 내 몸을 이끌어갈 것이다 꽃나무처럼 몸 전체가 꽃이 될 수 없어 불꽃처럼 온몸이 불이 될 수 없어 세상의 어둠을 다 밝힐 수 없는 이 한스러움 풀씨처럼 작은 귀로 세상을 들으려고 상처를 달래며 길 위에 서는 날도 밥상 위의 한 잎 배추잎보다 거룩한 것 없어 긁히고 터진 손발을 달래며 오늘도 돌아와 마주 앉는 식탁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이 세상을 눈부시게 .. 자결 - 이덕규 자결 이덕규 이른 이침이었습니다 뒷산을 오르다가 밤새 가만히 서 있었을 가시나무 가시에 이슬 한 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새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쿨쿨 잤을, 아직도 잠이 덜 깬 그 가시나무 가시에 맑고 투명한 이슬 한 방울이 매달린 채 바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 이덕규: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 으로 등단. #인기 #이덕규 #가방 #이슬한방울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 문정희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당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 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 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랜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 문정희.. 이전 1 ··· 6 7 8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