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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비 - 장영수 메이비 ​ 장영수 ​ ​ 우리는 고무신으로 찝차를 만들었다. 미군 찝차가 달려왔다. 네가 내리고. ​ 미군들이 쑤왈거리다가 메이비, 하고 떠나고. 그리하여 너는 메이비가 되었다. 미제 껌을 씹는 메이비. 종아리 맞는 메이비. ​ 흑판에 밀감을 냅다 던지는 메이비. 으깨진 조각을 주우려고 아이들은 밀려 닥치고. 그 뒤에, 허리에 손을 얹고 섰는 미군 같은 메이비. ​ 남자보다 뚝심 센 여자애보다 뚝심 센 메이비. 여자애를 발길로 걷어 차는 메이비. 지금은 비가 내리고. 어느 틈엔지 미군들을 따라 떠나 버린 메이비. ​ 바다 건너 가 소식도 모를 제 이름도 모르던 메이비. 어차피 어른이 되어서는 모두가 고아였다. 메이비. 다시는 너를 메이비라고 부르지 않을 메이비. ​ ​ ​ ​ ​ ​ ​ ​ ​ ​ ☆ 장..
금빛 은빛 - 홍희표 금빛 은빛 ​ 홍희표 ​ ​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면 임진강변의 민들레 하이얀 낙하산 달고 남으로 남으로 떠가네 ​ 한양으로 부산으로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하는 철마 ​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면 임진강변의 민들레 하이얀 낙하산 달고 북으로 북으로 떠가네 ​ 피양으로 신의주로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하는 철마 ​ 금빛 은빛 혼령만 오가고…… ​ ​ ​ ​ ​ ​ ​ ​ ​ ​ ☆ 홍희표: 1946년 대전 출생. 1966년 으로 등단. 시집으로 『살풀이』, 『숨쉬기』, 『모두 모두꽃』 등이 있음. 현재 목원대 교수. 호 산하(山下). 1946년 10월 6일 충남 대전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거쳐 인하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대전지회 부회장을 맡은 바 있고, ..
줄다리기 - 박상천 줄다리기 ​ 박상천 ​ ​ 줄다리기의 역설을 아는 이들은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 힘이 강한 이가 힘을 쓴 만큼 그들은 뒤로 물러갑니다 물러가고서도 이겼다고 좋아하지만, 그러나 아시나요 힘이 약해 끌려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강한 이들의 영토를 차지하면서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 줄다리기의 역설을 아는 이들은 세상을,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 ​ ​ ​ ​ ​ ​ ​ ​ ​ ☆ 박상천: 1955년 전남 여수 출생. 1980년 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랑을 찾기까지』 등이 있음. 현대 한양대 국문과 교수. #인기 #박상천 #가방 #줄다리기
용산에서.1 - 박영근 용산에서·1 ​ 박영근 ​ ​ OFF LIMITS ​ 철조망 녹슬어 가는 높은 담장 안에 비무장한 나무들이 새 둥우리 하나 지키고 있다 ​ ​ ​ ​ ​ ​ ​ ​ ​ ☆ 박영근: 1958년 전북 부안 출생. 별칭: 노동시인 1981년 로 등단. 시집으로 『취업공고판 앞에서』, 『대열』 등이 있음. 1958년 9월 3일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에서 태어났다. 1974년 3월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제도권 교육에 실망하여 스스로 그만두었다. 1980년 군에서 제대한 뒤 서울로 와 구로공단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시동인 《말과힘》에서 활동하였다. 1981년 《반시 反詩》 6집에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84년 펴낸 《취업공고판 앞에서》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현장노동..
아메리카 들소 - 윤재철 아메리카 들소 ​ 윤재철 ​ ​ 네 고향은 이제 빼앗긴 아메리카 대평원이지만 선량하고 거대한 네 어깨는 어쩌면 시골길의 야트막한 산봉우리들을 닮아 어깨로부터 길게 늘어진 머리는 하늘보다 늘 땅에 가깝다 ​ 어릴 적 미군부대 철조망에 매달려 헬로우 헬로우 껌을 외칠 때 기름칠을 하던 기관총을 우리를 향해 겨누던 벌거벗은 미군 병사의 거대한 체구를 너는 닮았지만 실상 나의 머리 속에는 우르르 몰려왔다 몰려가며 백인들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인디언의 등돌린 모습이 떠오른다 ​ 그리하여 너를 돌아가라고 하지 못하는 걸까 기름지고 광활한 네 조국 너를 잡아 부강하고 비대해진 네 조국 아메리카로 돌아가라고 하지 못하는 걸까 디굴디굴하고 안으로 깊은 네 눈을 보면 아메리카는 하나의 수모에 불과해 네 눈은 논두렁길 둠벙..
지상의 끼니 - 이기철 지상의 끼니 ​ 이기철 ​ ​ 종일 땀흘리고 돌아와 바라보는 식탁 위 밥 한 그릇 나를 따라오느라 고생한 신발, 올이 닳은 양말 ​ 불빛 아래 보이는 저 거룩한 것들 한 종지의 간장, 한 접시의 시금치 무침 한 컵의 물, 한 대접의 콩나물국 부딪치면 소리내는 한 쟁반의 멸치볶음 ​ 저것들이 내 하루를 이끌고 있다 내일도 저것들이 부젓가락 같은 내 몸을 이끌어갈 것이다 ​ 꽃나무처럼 몸 전체가 꽃이 될 수 없어 불꽃처럼 온몸이 불이 될 수 없어 세상의 어둠을 다 밝힐 수 없는 이 한스러움 ​ 풀씨처럼 작은 귀로 세상을 들으려고 상처를 달래며 길 위에 서는 날도 밥상 위의 한 잎 배추잎보다 거룩한 것 없어 ​ 긁히고 터진 손발을 달래며 오늘도 돌아와 마주 앉는 식탁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이 세상을 눈부시게 ..
자결 - 이덕규 자결 ​ 이덕규 ​ ​ 이른 이침이었습니다 뒷산을 오르다가 밤새 가만히 서 있었을 가시나무 가시에 이슬 한 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새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쿨쿨 잤을, 아직도 잠이 덜 깬 그 가시나무 가시에 맑고 투명한 이슬 한 방울이 매달린 채 바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 ​ ​ ​ ​ ​ ​ ​ ​ ​ ☆ 이덕규: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 으로 등단. #인기 #이덕규 #가방 #이슬한방울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 문정희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 문정희 ​ ​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당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 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 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랜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 ​ ​ ​ ​ ​ ​ ​ ​ ☆ 문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