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몾 잊어 - 김소월 몾 잊어 ​ 김소월 ​ ​ ​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틀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 ​ ​ ​ ☆ 김소월 (1902∼1934) 개설 본관은 공주(公州).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김성도(金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사립인 남산학교(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추일서정(秋日抒情)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버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을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간다. ​ ​ ​ ​ ☆ 김광균 (1914∼1993) ​ 생애 및 활동사항 경기도 개성 출생. 송도상업학교(松都商業學校)를 졸업하고 고무공장 사원으로 ..
화암사, 내 사랑 - 안도현 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
추석 무렵 - 김남주 추석 무렵 ​ 김남주 ​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덩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 ​ ☆ 김남주 (1946 ~ 1994) ​ 전라남도 해남 출생. 광주일고를 거쳐 전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수학하였다.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고, 1977년 황석영(黃晳暎)·정광훈·홍..
추석 무렵 - 맹문재 추석 무렵 ​ 맹문재 ​ 흙냄새 나는 나의 사투리가 열무 맛처럼 담백했다 잘 익은 호박 같은 빛깔을 내었고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우시장에 모인 아버지들의 텁텁한 안부인사 같았고 돈이 든 지갑처럼 든든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평안한 나의 사투리에는 혁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호치키스로 철하지 않아도 되었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나의 사투리에서 흙냄새가 나던 날들의 추석 무렵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구멍가게의 할머니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다 이발사의 가위질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했다 신문대금 수금원의 눈빛이 착했다 ​ ​ ​ ☆ 맹문재 (1965 ~ ) ​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시와 평론 활동을 함께 활발히 하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
진달래꽃 - 김소월 진달래꽃 ​ 김소월 ​ ​ ​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꽃을 사뿐히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아니 눈물흘리우리다 ​ ​ ​ ​ ☆ 김소월 (1902∼1934) ​ 개설 본관은 공주(公州).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김성도(金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사립인 남산학교(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던 중 3·1운동 직후 한때 폐교..
몾 잊어 - 김소월 몾 잊어 ​ 김소월 ​ ​ ​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틀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 ​ ​ ​ ☆ 김소월 (1902∼1934) 개설 본관은 공주(公州).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김성도(金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사립인 남산학교(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