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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 - 정끝별 염천 정끝별 능소화 담벼락에 뜨겁게 너울지더니 능소화 비었다 담벼락에 휘휘 늘어져 잘도 타오르더니 여름 능소화 꽃 떨구었다 그 집 담벼락에 따라갈래 따라갈래 달려가더니 여름내 능소화 노래 멈췄다 술래만 남은 그 옛집 담벼락에 첨밀밀첨밀밀 머물다 그래그래 지더니 올여름 장맛비에 능소화 그래 옛일 되었다 가을 든 네 집 담벼락에 여우는 사춘기 : 네이버쇼핑 스마트스토어 동일상품을 가장 낮은 가격으로 파는 쇼핑몰 smartstore.naver.com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 ​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 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 ​ ​ ☆ 박재삼(1933~1997) ​ 1933년 4월 10일 도쿄 출생. 경남 삼천포에서 성장했으며, 고려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현대문학사, 대한일보사, 삼성출판사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 그는 그 자연에 의지하여 위로와 지혜를 얻지..
아버지의 그늘 - 신경림 아버지의 그늘 ​ 신경림 ​ ​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
빈집 - 기형도 빈집 ​ 기형도 ​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 ​ ​ ☆ 기형도(1960~1989). 경기도 웅진군 연평리 출생. ​ 생애 및 활동사항 ​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고향은 황해도였으나 한국전쟁 중 연평도로 건너왔다. 1964년 일가족이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사했다. 당시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과 수재민들의 정착지로 도시 근교 농업이 성한 농촌이었다. 1967년시흥초..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 ​ ​ ​ ​ ​ ​ ☆ 기형도 (1060~1989) ​ □ 생애 및 활동사항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고향은 황해도였으나 ..
The Last train - 오장환 The Last train 오장환 저무는 역두 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悲哀야! 개찰구에는 못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흐터져 있고 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리여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긜 기둘러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노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실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路線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름 펼쳐 있다. ​ ​ ​ ​ ​ ​ ​ ​ ​ ​ ☆ 오장환 (吳章煥, 1918.5.5 ~ 1951) ​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북도 보은 출생. 본관은 해주(海州).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를 중퇴하였다. 1933년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문학(朝鮮文學)』에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1936..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 ​ ​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 ​ ​ ​ ​ ​ ​ ☆ 안도현 ​ 1961년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동에서 아버지 안오성과 어머니 임홍교의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대구 아양국민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문예반 '태동기문학동인회'에 가입하여 홍승우·서정윤·박덕규·권태현·하응백·이정하 등의 선후배들을 알게 되었고, '학원문학상' 등 전국의 각종 백일장과 문예 현상공모에서 수십 차례 상을 받았다. ​ 1980년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고, 대구에서 발간되던 통신문학지 《국시》 동인으로 박기영·박상봉·장정일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대학 시절 ..
황혼 - 이육사 황혼 ​ 이육사 ​ ​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 저 십이성좌(十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쎄멘트 장판 우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 ​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거산호(居山好) 2 - 김관식 거산호(居山好) 2 ​ 김관식 ​ ​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壽)하는 데다가 보옥(寶玉)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그 품 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아아(峨峨)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네 품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 같은 산정기(山精氣)를 그리며 산다. ​ ​ ​ ​ ​ ☆ 김관식 (1934~1970) 충남 논산 출신 ​ 개설 본관은 사천(泗川). 호는 추수(秋水)·만오(晩悟)·우현(又玄). 충청남도 논산 출신. 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