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김종길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 김종길 (1926 ~ 2017)
본명은 김치규(金致逵). 1926년 11월 5일 경북 안동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셰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한국시인협회장, 고려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문」이 입선하여 등단한 이후 시인과 시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대개의 이미지스트들이 경박한 모더니티에서 머물고 마는 데 비하여 그의 시는 첫 시집 『성탄제』(1969)에서부터 고전적인 품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명징한 이미지와 고전적 품격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염결성은 그의 시적 특징이다. 그의 시는 조만간 사라질 유한한 것들의 아름다움이 구성하는 세계와 이 세계 속에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자아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세계와 자아의 대립적 긴장 가운데 균형을 유지하는 절제의 정신을 견지한다. 이러한 절제의 정신은 그의 고전적 품격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서 시적 자아는 언제나 대상이나 감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절제와 극기의 태도는 그의 시적 감수성 속에 한시적 전통, 혹은 유가적 정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신처사가(新處士歌)」나 「고고(孤高)」에는 세속에 처하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초연한 태도를 견지하는 견인적 정신이 드러난다.
「고고」에서 시인이 말하는 ‘높이’는 어둠과 빛 사이의 긴장된 냉랑함이 가득한 시간에 세계내적 초월의 비전이 여는 정신의 높이이다. 세속에 거주하면서도 삶과 시가 격(格)을 벗어나는 것을 용인하지 않으며, 인내와 초연함으로 염결성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달리 부른다면 유가적 선비정신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그는 과작의 시인인데, 그의 시는 시인의 염결적 태도를 반영하듯 높은 완성도와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김종길의 시가 보여주는 이미지스트로서의 감각과 유가적 정신성의 조화는 한국 현대시가 가지는 득의의 부분이라 할 것이다. 영문학자이면서도 고전적 소양에 시 세계의 근원을 둔 김종길은 시론 또한 고전적 안정성과 균형감각을 지니고 있어 학문적 성과를 뚜렷하게 하고 있다.
시집 『성탄제』(1969), 『하회에서』(1977), 『황사현상』(1986), 『해가 많이 짧아졌다』(2004), 『해거름 이삭줍기』(2008), 『그것들』(2011), 『솔개』(2013) 등이 있으며, 시론과 산문집으로 『시론』(1965), 『진실과 언어』(1974), 『한국시의 위상』(1986) 『김종길시론집 시에 대하여』(1986), 『현대의 영시』(1998),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1998)등을 간행하였다. 1978년 목월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05년 제2회 이육사 시 문학상과 제5회 고산문학상을 2007년 제8회 청마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처 : 김종길 [金宗吉]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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