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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한도 - 백무산

 

세한도  (국보 180호)-1844년 헌종때 제작(23.7*109cm)

 

세한도  

 

백무산  

 

 

 

왜 그렸을까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앞서 그랬을까  

목수가 보면 웃을 그림을 그렸을까  

풍수가 보면 혀를 찰 집을 그렸을까  

 

늙은 소나무 부리 위에 집을 짓다니  

숲 그늘 습한 땅에 터를 잡다니  

방위도 살피지 않고 지형도 살피지 않고  

주위 땅이 더 높아 비만 오면 물이 콸콸  

집 안으로 쏟아질 참인데  

 

그는 아마도 유배지의 겨울 솔숲을  

다 그려놓고는 못내 집이 그리워  

집 한 채를 끼워넣었던 것일까  

그런데 저 집은 살림집이 아니지 않은가  

이상하게 크고 긴 건물과 낯선 문  

궁궐일까, 그가 그리워하던 것은 옛 영화였을까  

임금이었을까, 그것이 아니면 왜  

 

저리 기막힌 소나무 아래  

저리 한심한 집을 생각했을까  

그는 두 가지 욕망에 괴로워했을까  

그렇지 않다면 왜 저런 욕망이 깊이 깔린  

그림을 그렸을까  

 

 

 

시집『초심』(실천문학사,2003)  

 

 

 

 

☆ 백무산 (1955~)  

 

노동자시인 백무산은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74년 공고를 마쳤다. 73년부터 현대중공업, 현대중전기 등 대공장에서 조선·전기·금속노동자로 일했으나 1986년 작업장을 떠났다. 83년부터 노동운동에 몸담으며 84년에는 연작시 <지옥선>을 처음 발표했다. 1989년 초 창간된 <노동해방문학>의 편집위원이었으며, 89년 9월 첫시집『만국의 노동자여』로 제1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겨레신문이 뽑은 80년대 10대 시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백무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지난 88년 말부터 89년 초까지 약 4개월여에 걸쳐 진행된 울산 현대중공업 대파업투쟁을 한편의 완결된 장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임홍배는 "노동해방의 전망이 한 작가의 삶과 실천으로 담보되면서 동시에 문학적 표현으로까지 수렴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백무산 시인은 바로 그러한 드문 예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출처: 백무산, 노동자의 책  

#세한도 #한설 #눈 #그림 #김정희  

 


□ 세한도  

 

 

 

歲寒然後 (세한연후)

知松柏之後彫也 (지송백지후조야)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돋보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국보 제180호. 세로 23㎝, 가로 69.2㎝. 종이 바탕에 수묵.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었던 김정희가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北京)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인 역관(譯官) 이상적(李尙迪)에게 1844년(헌종 10)에 답례로 그려준 것이다. 김정희는 이 그림에서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발문(跋文)이 작가 자신의 글씨로 적혀 그림 끝에 붙어 있고, 그 뒤를 이어 이듬해 이 그림을 가지고 북경에 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그곳의 명사 16명에게 보이고 받은 찬시들이 길게 곁들여 있다. 그리고 뒷날 이 그림을 소장하였던 김준학(金準學)의 찬(贊)과 오세창(吳世昌)·이시영(李始榮)의 배관기 등이 함께 붙어서 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다.

 

화면에는 오른쪽에 ‘歲寒圖(세한도)’라는 화제(畵題)와 ‘藕船是賞阮堂(우선시상완당)’이라는 관지(款識)를 쓰고 ‘正喜(정희)’와 ‘阮堂(완당)’이라는 도인(圖印)을 찍어 놓았다. 그림 자체는 단색조의 수묵, 그리고 마른 붓질과 필획의 감각만으로 이루어졌다. 끝으로 긴 화면에는 집 한 채와 그 좌우로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가 두 그루씩 대칭을 이루며 지극히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텅 빈 여백으로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이와 같이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요소들은 모두 문인화의 특징들로 직업화가의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에 반발하는 작가의 의도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그리고 작가의 농축된 내면 세계에서 표출된 필선과 먹빛의 담백하면서도 고담한 분위기는 문기(文氣)를 비롯하여 문인화가 지향하던 사의(寫意)의 세계와 서화일치(書畵一致)의 극치를 보여 준다.

 

조선 말기를 풍미하였던 김정희의 문인화 이념의 집약된 경지와 함께 조선시대 문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임창순 감수, 중앙일보사, 1985)

국보(안휘준 편, 예경산업사, 1984)

한국회화사(안휘준, 일지사, 1980)

우리나라의 옛그림(이동주, 박영사, 1975)

淸朝文化東傳の硏究 (藤塚麟, 東京 國書刊行會, 1975)

「金正喜の歲寒圖」(洪善杓,『季刊コリアナ』2,1988)  

 


 

 

 

歲寒圖(세한도) 발문 해석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此皆非世之上有(차개비세지상유) 購之千萬里之遠(구지천만리지원) 積有年而得之(적유년이득지) 非一時之事也(비일시지사야)  

 

지난 해에 두 가지 <만학>, <대운> 책을 부쳐왔고, 금년에는 <우경문편>이라는 책을 부쳐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요. 머나먼 천리 밖에서 구한 것이며, 여러 해를 거쳐 얻은 것이요, 일시적인 일이 아니다.  

  

 

且世之滔滔(차세지도도) 惟權利之是趨爲之(유권리지시추위지) 費心費力如此(비심비력여차) 而不以歸之權利(이불이귀지권리)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내귀지해외초췌고고지인) 如世之趨權利者(여세지추권리자)  

 

더구나, 세상은 물밀듯이 권력만을 따르는데, 이와 같이 심력을 써서 구한 것을 권력 있는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밖의 한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게 주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추세하는 것과 같구나.  

 

太史公云(태사공운) 以權利合者(이권리합자) 權利盡以交疎(권리진이교소) 君亦世之滔滔中一人(군역세지도도중일인)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不以權利視我耶(불이권리시아야) 太史公之言非耶(태사공지언비야)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력으로 합한 자는 권력이 떨어지면 교분이 성글어진다고 하였는데, 군도 역시 이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일텐데, 권력에 추세하는 테두리를 초연히 떠나서 권리를 쫓아 들어가지 않으니, 나를 권력으로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이 잘못된 것인가?  

 

孔子曰(공자왈) 歲寒然後(세한연후) 知松栢之後凋(지송백지후조)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歲寒以前一松栢也(세한이전일송백야) 歲寒以後一松栢也(세한이후일송백야)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今君之於我(금군지어아) 由前而無加焉(유전이무가언) 由後而無損焉(유후이무손언)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잣나무는 시들지 않음을 알게된다" 고 하였다. 송백은 사철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으로서, 세한 이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세한 이후에도 하나의 송백이다. 성인이 특히 세한을 당한 이후를 칭찬하였는데, 지금 군은 전이라고 더한 것이 없고, 후라고 덜한 것이 없구나.  

 

 

然由前之君(연유전지군) 無可稱(무가칭) 由後之君(유후지군) 亦可見稱於聖人也耶(역가견칭어성인야야) 聖人之特稱(성인지특칭)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비도위후조지정조경절이이)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세한 이전의 군을 칭찬할 것 없거니와, 세한 이후의 군은 또한 성인에게 칭찬받을 만한 것 아닌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한갖 시들지 않음의 정조와 근절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세한의 시절에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烏乎(오호) 西京淳厚之世(서경순후지세) 以汲鄭之賢(이급정지현) 賓客與之盛衰(빈객여지성쇠) 如下邳榜門(여하비방문) 迫切之極矣(박절지극의) 悲夫(비부) 阮堂老人書(완당노인서)  

 

아! 서한의 순박한 세상에 급암,정당시 같은 어진 이에게도 빈객이 시세와 더불어 성하고 쇠하곤 하였으며, 하비의 방문같은 것은 박절이 너무 심하였으니 슬픈 일이다. 완당노인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