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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화암사, 내 사랑 - 안도현

 

 

 

 

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 안도현

1961년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동에서 아버지 안오성과 어머니 임홍교의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대구 아양국민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문예반 '태동기문학동인회'에 가입하여 홍승우·서정윤·박덕규·권태현·하응백·이정하 등의 선후배들을 알게 되었고, '학원문학상' 등 전국의 각종 백일장과 문예 현상공모에서 수십 차례 상을 받았다.

1980년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고, 대구에서 발간되던 통신문학지 《국시》 동인으로 박기영·박상봉·장정일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대학 시절 최정주·최문수·권강주·정영길·김영춘·백학기·이진영·이요섭·이정하 등 선후배들을 알게 되어 이들과 '원광문학회'를 결성하였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당선되었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었다.

1985년 2월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으나, 1989년 8월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리중학교에서 해직당하였다. 이후 1994년 2월까지 전교조 이리익산지회에서 일하면서 김진경·도종환·배창환·조재도·정영상·조성순·조현설 등과 함께 '교육문예창작회' 활동을 하였다. 1994년 3월에 전라북도 장수 산서고등학교로 복직되어 일하다가 1997년 2월 교사직을 그만 두고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5년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출간하고 김백겸·고형렬·양애경·김경미·고운기 등과 함께 '시힘' 동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8년에는 이광웅·정양·김용택·이병천·박남준 등과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199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전북지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1996년 제1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1998년 제13회 소월시문학상, 2000년 원광문학상, 2002년 제1회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그리운 여우》(1997), 《바닷가 우체국》(1999),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01) 등의 시집과 《연어》(1996), 《관계》(1998), 《짜장면》(2000), 《증기기관차 미카》(2001) 등 어른들을 위한 동화, 그리고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1998), 《사람》(2002) 등이 있다.  #화암사 

출처: 안도현 [安度眩]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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