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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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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무렵 - 김남주 추석 무렵 ​ 김남주 ​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덩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 ​ ☆ 김남주 (1946 ~ 1994) ​ 전라남도 해남 출생. 광주일고를 거쳐 전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수학하였다.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고, 1977년 황석영(黃晳暎)·정광훈·홍..
추석 무렵 - 맹문재 추석 무렵 ​ 맹문재 ​ 흙냄새 나는 나의 사투리가 열무 맛처럼 담백했다 잘 익은 호박 같은 빛깔을 내었고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우시장에 모인 아버지들의 텁텁한 안부인사 같았고 돈이 든 지갑처럼 든든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평안한 나의 사투리에는 혁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호치키스로 철하지 않아도 되었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나의 사투리에서 흙냄새가 나던 날들의 추석 무렵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구멍가게의 할머니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다 이발사의 가위질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했다 신문대금 수금원의 눈빛이 착했다 ​ ​ ​ ☆ 맹문재 (1965 ~ ) ​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시와 평론 활동을 함께 활발히 하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