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 심훈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曺)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1901~1936)
서울 출생. 본명은 대섭(大燮). 경성제일고보 재학시 3 · 1운동에 가담하여 4개월간 복역했고, 1923년부터 《동아일보》 · 《조선일보》 ·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했으며, 1927년에는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집필 · 각색 · 감독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30년 《조선일보》에 장편 《동방(東方)의 애인(愛人)》을 연재하다가 검열에 걸려 중단당했다. 그의 대표작인 《상록수》(1935)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하여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시킨다. 브나로드 운동의 실천적인 모습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는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
출처: 심훈 [沈熏]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구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