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 문정희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당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 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 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랜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 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린 사랑에게』, 『남자를 위하여』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1947년 5월 25일 전남 보성 태생. 진명여고를 거쳐 동국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진명여고 재학중 첫 시집 『꽃숨』(1965)을 발간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불면」과 「하늘」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문정희 시집』(1973),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아우내의 새』(1986), 『그리운 나의 집』(1987), 『제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어 주세요』(1990), 『남자를 위하여』(1996), 『오라, 거짓 사랑아』(2001),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2003),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2004), 『나는 문이다』(2007), 『찔레』(2008) 등 많은 시집을 냈다. 그리고 1975년 시극집 『새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낭만주의적 정신을 기본 색채로 하고 있으며, 청순한 감각과 명징한 언어로 형상화되었다.
그의 시적 태도는 “아니어요. 작은 햇살에도 얼굴 부끄러운/ 풀꽃 같은/ 사랑 하나로// 높은 벽에 온몸 부딪고/ 스러지고 싶어요”(황진이의 노래 1)에서 보여주듯 세계 자체를 직유 또는 은유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감정과 연결시켜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이다”, “~되다”, “~싶다”의 유비적 세계에 대한 서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사랑, 부끄러움, 고뇌, 자유, 슬픔의 센티멘털한 감정을 정감있게 그려내는가 하면, 「감자」,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남한강을 바라보며」 등에서처럼 설화적 모티프를 현실과 결부시켜 그려내기도 하였다.
출처: 문정희 [文貞姬]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인기 #문정희 #가방 #사랑하는사마천